소리샘

[스크랩] 에밀레종(성덕대왕신종)

심춘 2012. 3. 5. 10:11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

 

일본 NHK 에서 세계의 종소리를 특집으로 꾸민적이 있는데,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이 단연 으뜸이었다는 것이다.

장중하고 맑은소리 뿐만 아니라 긴 여운을 갖는것은 에밀레종 뿐이라고 한다.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鍾) 

                                                                                                통일신라 771년,  국보 제29호

 

 

에밀레종이라고도 불리며 현종하는 종중 최고의 걸작품으로

             우리나라 최대의 종으로 1037자의 명문과 1천3백여년 동안 지속된 소리를 가지고 있다.

가슴을 울리는 저음역의 여운 소리가 마치 어린아이 울음소리 같다 하여 에밀레종이라 불리운다.

타종시 웅장함과 여운의 청아함은 신비롭기까지 하며,

                                    같은 신라시대의 범종과 비교해도 확실히 뛰어난 소리를 가지고 있다.

신라사람들에게 종소리는 부처 님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당시 기준으로 청동 27톤 이상을 어떻게 모았겠는가.

모으기도 힘들거니와 34년동안 수도없는 시행착오를 거쳐 만든 종이다.

정성에 정성을 들인 신라 최고의 종이다.

높이 3.7m(몸체 높이 2.91m, 종걸이 높이 0.65m),

              입지름 2.27m, 두께 11∼25㎝, 무게 18.9t으로 국립경주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신라 35대 경덕왕(景德王)이 그의 아버지 33대 성덕왕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큰 종을 만들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자 그의 아들 혜공왕(惠恭王)이 뒤를 이어 771년(혜공왕7)에

                         구리 12만근(27t)을 들여 완성(대략 34년 걸림)하고 성덕대왕신종이라 불렀다고 한다.

원래 봉덕사에 걸었던 것을 1460년(세조6) 영묘사(靈妙寺)에 옮겨 걸었는데,

               홍수로 절이 떠내려가고 종만 남았으므로 현 봉황대(鳳凰臺) 옆에 종각을 짓고 보존하다가

                                                                                              1915년 경주박물관으로 옮겼다.

 

 

 

                                                                                                                               비천상

 

 

에밀레종에는 똑같은 비천상이 종 둘레에 네개가 양각되어 있다.

금방이라도 하늘로 올라갈것만 같은 인물이 중앙에 연화좌위에 앉아 염원을 드리는것 같다.

비천상은 범종에서 가끔 볼 수 있는데

             성덕대왕 신종의 비천상이 제일 우아하고 예술적인 가치가 훌륭하다고 한다.

 

 

 

                                                                                                      용뉴(龍紐)와 음통(音筒)

                                                                         용뉴(龍紐)와 음통(音筒)은 우리나라에만 있다.

 

 

            

 

                                                                 용의 허리춤에 둥근 쇠막대기(지름 8.5cm)

 

 

여기서 한가지 흥미로운 점을 주목하자.

고작 지름이 8.5cm 밖에 안되는 저 쇠막대기하나로 18.5t이 넘는 무게를 지탱하고 있다.

현재의 기술로도 만들지 못해서 1300년 전부터 써 오던 것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한다.

최근에 와서야 이 쇠막대기의 신비가 조금 풀렸는데 이것 또한 흥미롭다.

단순한 쇠막대기가 아니라

           속이 빈 쇠막대기를 여러번 두들겨서 겹겹히 하나의 쇠막대기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현재의 기술로 18.9t의 종무게와 타종시 충격을 견딜 쇠막대를 만들지 못한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

조상들이 정성에 정성을 들여 만든 이 쇠막대기 하나 제대로 못 만든다는 사실은 정말 놀랍기 그지없다.

 

 

 

                                                                                                            종신구선대(鐘身口線帶)

 

바닥을 주목하라.

민자가 아니다.

아름다운 무늬에 곡선의 바닥을 가지고 있다.

엄청난 무게 때문에 민자로 만드는게 더 편할텐데 종바닥에 온갖 정성을 기울인 흔적이 보인다.

당시에 어떻게 이렇 게 할 수 있었을까?

 

 

 

                                                                                                                                명   동

 

 

이 명동의 역할은 일종의 공명동 역할을 해서 타종소리가 은은하고 오래 지속되는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

보이는 명동은 신라시대의 것은 아니다.

안타깝게도 신라시대의 명동자리는 모두 파괴되어 현재 그 명동의 형상과 치수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에밀레종의 몸체에 새겨져 있는 1,000여자의 명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무릇 심오한 진리는 가시적인 형상 이외의 것도 포함한다.

 눈으로 보면서도 알지 못하며, 진리의 소리가 천지간에 진동하여도 그 메아리의 근본을 알지 못한다.

 부처님께서는 때와 사람에 따라 적절히 비유하여

                                진리를 알게 하듯이 신종을 달아 진리의 소리를 듣게 하셨다.

 

 

                       

 

                                                1920년대 사진엽서에 실린 '봉덕사종'의 모습

 

 

20세기 들어와 두번의 복제시도가 있었다.

 하나는 아메리카 건국 200주년을 기념하는 선물로 1976년에 제작되어 '우정의 종' 이라는 이름으로

         로스앤젤레스 산페드로에 한 공원에 설치하였고, 또 다른 하나는 서울 종로 보신각에 걸렸다.

 그러나 그 어느것도 에밀레종의 신비한 소리를 재현하진 못했다.

 

 혹자는 말한다.

 에밀레종과 비교했을 때 깡통소리를 듣는 것 같다고.......

 일본 NHK가 세계의 유명한 종소리를 녹음하여

                     경연대회를 가졌는데 에밀레종이 단연 최고를 차지했던 적이 있다.

 종소리 평가 테스트 결과 에밀레종(신라) 86,

                                   상원사종(신라) 65, 보신각종 58, 영락대종(중국) 40 이었다고 한다.

 

 이탈리아 학자가 포항종합제철에 왔다가 한국의 철 문화를 보기 위해 찾던 중에 가까운 경주에서

     에밀레 종을 보고 주물의 기법과 크기, 종소리에 감탄을 하고 한국민은 이상한 사람이라고 했다고 한다.

"1000년 전에 에밀레 종과 같은 훌륭한 종을 만들 정도로 철을 다루는 기술이 뛰어난 민족이 어떻게

           나 같은 하찮은 학자에게 자문을 구하는가" 하면서 에밀레종에 대한 평을 대신했다는 일화가 있다.

 

 

                 이 종소리 들리는 곳마다 악은 사라지고 착한 마음 피어 나소서

                   나라 안 생명으로 태어난 인간은 물론이고 짐승에 이르기까지

                         바다에 이는 잔잔한 물결처럼 고르게 깨달음의 길에 올라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주소서

 

                                                           -  성덕대왕신종에 새겨진 명문  -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의 전설

 

 신라 35대 경덕왕은 봉덕사에 큰 종을 만들라고 명하고 전국에 불사를 일으키고

 당시 이름난  주조공 "일진"을 시켜 공을 들여 만들었다.

 그런데 완성된 종을 타종해도 웬일인지 소리가 나지를 않았다.

 경덕왕은 아무레도 정성이 부족해서 부처님이 노하신 것 같다며

                                         다시 시주를 거두어 정성들여 만들라고 지시했다,

 봉덕사스님들은 전국을 돌며 시주를 받기에 바쁜 와중에 경덕왕이 타계를 했고,

                                                                   종을 만드는 일은 계속되었다,

 

 하루는 봉덕사주지스님이 꿈속에서 이상한 현몽을 했다.

"몇일전에 시주를 받으러 갔다가 그냥 돌아온 집 아이를 데려오너라, 그 아이가 들어가야 되느니라!"

 잠에서 깬 주지스님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그 아이라면 시주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던 그집 아이를 말하는 것이구나"하고 부처님의 뜻을 알았다.

 

 날이 밝자 스님은 그 집에 가서 꿈 이야기를 했다.

 아기어머니는 스님의 뜻은 잘 알겠지만 어떻게 내 속으로 난 자식을

                              꿇는 쇳물 속에 넣을 수가 있는가 하고 눈물을 흘리며 넋두리를 했다.

 그러나 결국 그 어미는 아이를 내 놓고 말았다.

 드디어 종이 완성되고 왕이 보는 앞에서 스님은 타종을 하자

                      맑은 종소리 속에서 "에밀레" 하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섞여 나왔다고 한다.

 그 소리는 마치 아기가 자신의 어머니를 애타게 찾는 듯한 소리였으며

                                                 그래서 이종을 " 에밀레종" 이라고 불렀다고 전해진다.

 

 

 

                                                                                                                     성덕왕릉

 

 

 

 

출처 : 마이웨이 
글쓴이 : 박지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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