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샘

광합성 고효율 비결은 양자 결맞음

심춘 2010. 1. 23. 14:09

 

 

| 글 | 이영민 포스텍 화학과 교수 ㆍymrhee@postech.ac.kr |

 

빛에너지를 화학에너지로 바꾸는 광합성의 비밀은 오랫동안 미스터리였다.
그런데 최근 그 비밀에 대한 단서가 제시됐다. 현대물리학의 한 축인 양자역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현상인 양자 결맞음이 그 단서다.

인류는 지난 100년 동안 화석연료를 남용한 결과 연료 고갈에 따른 에너지 위기와 지구온난화로 인한 환경 위기를 초래했다. 그 대안으로 떠오른 에너지원 가운데 하나가 태양광이다. 빛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바꿔주는 태양광발전은 사실 인류의 발명품은 아니다. 적어도 30억 년 전 박테리아가 발명한 광합성이 그 원조다.

광합성은 엽록소 같은 색소가 햇빛을 흡수해 그 에너지를 전자로 전달하고 이 전자가 이산화탄소를 환원시켜 포도당을 만드는 과정이다. 즉 광합성에서는 빛에너지가 전기에너지를 거쳐 화학에너지로 저장된다. 태양광발전은 광합성에서 전기에너지를 만드는 단계까지에 해당한다. 많은 과학자들이 태양광발전의 효율을 높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광합성의 효율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식물이 빛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바꾸는 최대 효율은 95%가 넘는데, 그 정확한 메커니즘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광합성의 높은 효율은 ‘양자 결맞음’이라는 양자역학적 현상 때문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이로써 생명체에서 일어나는 광합성 같은 현상을 양자역학으로 해석하는 양자생물학(quantum biology) 시대의 막이 올랐다

 

전자는 모두 똑같은 전자

외떡잎 수생식물인 엘로디아 세포의 광학현미경 사진. 세포마다 자그마한 엽록체가 점점이 박혀 있다. 엽록체는 빛의 세기와 방향에 따라 세포 안에서 이동하면서 광합성 효율을 높인다.
광합성이 일어나는 식물의 엽록체를 들여다보면 수많은 단백질과 색소가 함께 덩어리져 막에 붙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엽록소 같은 색소분자가 하나씩 따로 있지 않고 수십 개가 모여 있는 이유는 이들이 흡수한 빛에너지가 한곳으로 모여 전기에너지를 만들기 때문이다. 빗줄기 하나의 양은 얼마 안 되므로 깔때기를 만들어 빗물을 한 통에 모으면 효율적인 것과 같은 이치다.

최근까지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한 색소가 빛에너지를 흡수하면 릴레이 하듯 차례대로 옆에 있는 색소들을 거쳐 에너지를 전달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방식은 시간이 많이 걸릴 뿐 아니라 중간에 에너지 손실이 일어날 수도 있다. 이런 설명에 만족할 수 없었던 몇몇 과학자들은 양자역학의 관점에서 이 과정을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마침내 이를 지지하는 증거를 발견했다. 아래의 간단한 퀴즈를 풀어 보면 두 관점의 차이를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열 명의 사람들이 한 줄로 서 있으며, 맨 앞의 사람이 맨 뒤의 사람에게 1만 원을 갚기 위해 지폐 한 장을 보낸다고 가정하자. 한 사람이 다음 사람에게 지폐를 전하는 데에 1초가 걸린다면, 이 돈이 처음 사람에서 마지막 사람까지 전달되는 최소한의 시간은 얼마일까. 이것이 함정을 가진 넌센스 퀴즈라고 생각해 10초가 아닌 9초라고 대답할지도 모르겠다. 10명 사이에서는 9번의 전달 과정만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답은 1초일 수도 있다. 앞에 있는 9명의 사람이 모두 1만 원씩을 꺼내 동시에 한 번만 전달하면 결국 맨 뒤의 사람만 그 돈을 받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이는 1만 원짜리 지폐들이 모두 동등하다는 원리에 기반하고 있다. 최근의 연구결과는 이와 비슷한 현상이 광합성에서도 일어남을 밝혔다. 한 색소가 빛에너지를 흡수할 때 다른 색소가 동시에 작용해 깔때기 끝으로 순식간에 에너지를 손실 없이 보낼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현상은 양자역학으로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양자역학에서 다루는 자연계에 존재하는 기본 입자들은 서로 구분되지 않는다. 전자는 모두 전자일 뿐 어떤 특정 전자를 다른 전자로부터 구분해낼 수 없다.
양자역학에서는 빛 또한 광자(photon)라는 입자로 보며 이 입자들 또한 서로 구분되지 않는다. 이러한 입자들의 중요한 특성은, 그들이 어느 한 지점에 놓여있는 게 아니라 파동함수라 불리는 수식에 따라 넓은 공간에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양자역학으로 사람들이 알아낸 또 다른 중요한 현상이 있다. 만일 두 개의 양성자가 가까이 있을 때, 그 근처에 있는 전자는 두 원자핵을 아우르는 전체적인 파동함수에 따라 분포한다. 물론 전자가 두 개라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난다. 이렇게 두 개의 전자와 두 개의 양성자로 형성되는 것이 수소 분자다.

이처럼 어느 한 입자가 존재할 수 있는 여러 공간이 가까이 있을 때, 그 입자는 전 공간을 아우르는 하나의 거대한 파동함수에 따라 분포한다. 이와 같은 현상을 ‘양자 결맞음’(quantum coherence)이라고 하는데, 입자의 파동성을 설명하지 못하는 고전 역학에서는 기술할 수 없는 현상이다. 앞에서 예를 든, 협동을 통한 돈 갚기가 조금이나마 비슷한 상황이다.

엽록소가 빛에너지를 모으는 메커니즘
엽록체 막에는 엽록소가 깔때기처럼 배열돼 있어 흡수한 빛에너지를 가운데 반응중심으로 모아 다음 광합성 단계를 진행한다.
지금까지는 한 엽록소에서 빛에너지를 흡수한 전자가 단계적으로 옆에 있는 엽록소로 이동해 반응중심에 도달한다고 생각했다(1). 그러나 최근 빛에너지를 흡수한 전자가 양자 결맞음에 따라 파동처럼 전체 깔때기에 퍼져 순식간에 반응중심으로 흘러감을 시사하는 실험결과가 발표됐다(2).

색소 무리에 걸쳐 있는 파동

그런데 광합성에 관여하는 색소나 단백질처럼 큰 분자들이 모여 있는 상태에서는 양자 결맞음을 기대하기 어렵다. 고체나 액체 속에 존재하는 분자들은 주변에 위치한 다른 분자들의 진동 운동 같은 간섭을 받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에 결이 맞는 상태에 있는 분자들이라도 이와 같은 영향 때문에 보통 그 결맞음은 순식간에 깨지고 만다.

따라서 액체상에서 흡수한 빛에너지를 지니는 전자를 전달할 때 결맞음은 실질적으로 존재하기 어려우며, 전자는 한순간에 특정한 한 분자에만 존재한다고 여기는 것이 보통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느 한 색소분자가 흡수한 빛에너지를 지니는 전자를 전달하는 방법은, 그 전자가 각각의 색소분자들을 징검다리를 건너듯 뛰어다니는 길밖에 없다. 이렇게 뛰어다니는 경우 에너지 전달의 효율은 분자의 개수가 늘어날수록 불리해진다.

먼저 전달되는 시간도 많이 걸릴 것이며, 중간에 경유지로 이용되는 분자에서 어떠한 이유에서라도 에너지가 엉뚱한 곳으로 흘러갈 확률이 존재한다면 경유할 분자의 수가 늘어날수록 에너지 전달 효율이 떨어지게 된다. 게다가 진동하고 있는 주변의 분자들이 에너지를 빼앗아갈 가능성도 늘 존재한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흡수한 빛에너지를 전파할 때 결맞음이 깨지는 현상은 주변 진동이 제멋대로 존재하는 액체상이나 고체상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는 진동 운동이 대체로 수 fs(펨토초, 1fs= 10-15초)라는 짧은 시간 안에도 다양하게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광합성 과정에서 이런 일반화가 옳지 않을 가능성이 발견된 것이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화학과 그레이엄 플레밍 교수팀은 초고속 시간 분해능 레이저를 사용한 실험으로 광합성에 이용되는 색소분자들 사이의 결맞음이 수백fs 동안 지속된다는 사실을 밝혀 2007년 ‘네이처’에 발표했다. 결맞음이 있는 상태라면 모든 색소 분자들은 하나의 거대 양자 시스템처럼 행동하며, 한 분자가 흡수한 에너지가 다른 분자에 전파되는 과정도 건너뛰기 없이 순식간에 일어날 수 있다. 이는 광합성의 효율이 왜 사람이 만든 태양전지보다 더 높은지 설명할 수 있는 놀라운 발견이다.

과연 어떠한 요인이 광합성 환경에서 주변 분자들의 움직임에 따른 교란효과를 없앨 수 있는 것일까. 논리적인 설명으로 색소분자들을 둘러싸고 있는 단백질 분자가 색소분자들이 결맞음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가설이 있다. 실제로 단백질은 고분자이지만 특정한 구조로 잘 접혀 있는 상태로 존재하며, 단백질 내의 원자들의 진동은 어떤 질서를 가질 수도 있다. 이런 단백질의 진동은 비록 개개의 색소 분자의 상태에 영향을 미치겠지만, 여러 색소 분자들이 제멋대로 바뀌지 않고 같은 정도의 변화를 겪게 할 수도 있다. 만일 그렇다면, 색소 분자들 사이의 상대적인 환경은 시간에 따라 그리 많이 변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의 결맞음도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다.

유기 반도체에서도 양자 결맞음 발견

 

 

초고속 시간 분해능 레이저 장비로 광합성의 양자효과를 밝힌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화학과 플레밍 교수(가운데) 연구팀.

이런 단백질의 역할은 참으로 신기하기 그지없다. 단백질 내부에 무수히 존재하는 진동들의 총합이 빛에너지를 흡수한 색소의 결맞음을 깨뜨리지 않도록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화의 꾸준하고도 놀라운 역할을 생각해보면 이는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결맞음이 없던 원시적인 광합성을 하던 생명체에서 양자 결맞음을 조금 더 길게 유지할 수 있는 돌연변이가 생겼다면 광합성 효율이 더 좋아졌을 것이다. 그 결과 이 돌연변이체는 생존과 번식에서 우위를 가져 선택됐을 것이다.

최근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태양광 에너지 분야에 이 발견을 응용하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에너지 전달과정에서 광합성 단백질처럼 양자 결맞음을 유도할 수 있는 물질이나 방법을 개발할 수 있다면, 태양에너지를 다른 유용한 형태의 에너지로 전환하는 효율을 향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2 연구자들은 단순한 광합성 시스템인 녹색유황박테리아의 엽록체복합체를 이용했다. 그림은 단백질(기둥과 리본처럼 생긴 부분) 속에 엽록소 7개가 배열된 복합체의 입체구조. 3 흰색 화살표가 가리키는 부분이 한 엽록소의 전자 파동이 다른 엽록소에 걸쳐 있음(양자 결맞음)을 보여주는 피크다.

 

 

 

실제로 캐나다 토론토대 화학과 그레고리 숄레스 교수팀은 사슬 같은 유기 반도체 고분자가 상온에서 양자 결맞음으로 에너지를 전달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1월 16일자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이런 양자 결맞음은 사슬 같은 분자에서 15~20개에 이르는 화학결합에 걸쳐 250fs 이상 유지됐다. 양자 결맞음이 광합성에 관여하는 천연색소와 단백질의 복합체뿐 아니라 합성고분자에서도 관찰됨으로써 태양광 에너지를 좀 더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이 오래전 발명한 비밀이 인류를 에너지 위기에서 벗어나게 하는 데도 결정적인 기여를 하지 않을까.

이영민 교수는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단백질 접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에서 양자화학이론을 연구한 뒤 지난해 8월 포스텍 화학과에 부임해 단백질에서 일어나는 양자화학 현상을 규명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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